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영혼의 색
미술관에서 마크 로스코의 블랙 페인팅 앞에 서면, 사람들은 종종 말을 잃습니다. 대형 캔버스를 가득 채운 검은 색조의 평면, 그리고 그 안에 미세하게 배어든 회색과 붉은 기운은 말보다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색이 거의 없는 이 추상화 앞에서 왜 사람들은 울고, 묵상하며, 위로를 느낄까요?
로스코는 색채의 화려함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생애 말기에는 점점 어두운 색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 자리한 ‘블랙 페인팅’은 단순한 검정의 나열이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예술적 유서입니다. 이 글에서는 마크 로스코의 블랙 페인팅 시리즈가 왜 현대미술의 전설이 되었는지, 그 철학과 감정, 상징을 함께 탐색합니다.

1. 색을 잃어가는 화가, 어둠 속에서 태어난 명상
마크 로스코(1903–1970)는 원래 강렬한 색의 대가로 알려졌습니다. 붉은색, 주황색, 보라색 등으로 이루어진 ‘색면추상(Color Field)’의 대표작들은 색의 감정적 울림을 관객에게 직접 전달하는 회화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중후반, 로스코의 색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가 말년에 접어들며 그린 블랙 페인팅은 전작들과 확연히 다릅니다. 붉은 기운이 사라지고, 깊은 회색과 검정이 지배하며, 색보다는 ‘공기’와 ‘침묵’이 감도는 작품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이 시리즈는 특히 **휴스턴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을 위해 제작된 작품군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로스코는 종교적인 목적의 채플을 위해, 어떠한 종교에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사람을 위한 ‘명상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회화는 색채의 소리를 점점 거두고, 고요한 어둠 속에서 침묵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 침묵은 단순한 공허가 아닌, 인간 존재의 깊은 내면을 마주하게 만드는 존재론적 고요입니다.
2. 검정은 죽음이 아닌 응시다: 색이 없는 색으로 말하는 감정
많은 이들은 로스코의 블랙 페인팅을 보며 우울, 상실, 죽음을 연상합니다. 실제로 그는 작품 제작 후 1970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에, 블랙 페인팅은 그의 유서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로스코는 이 그림들이 단순한 죽음의 기록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감정의 가장 정제된 ‘침묵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세한 톤의 겹겹이 쌓인 색면과 가장자리의 흐림 처리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구조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검정’ 하나지만, 그 안에는 숨겨진 보라, 붉은 브라운, 남색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색의 중첩은 로스코가 말한 “인간의 심연을 향한 창(窓)”이자, “영혼의 심부를 관통하는 고요한 진동”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색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감정을 그린다.”
이 감정은 언어로 설명되지 않고, 관객이 그림 앞에 섰을 때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울컥함, 정적, 떨림. 로스코의 검정은 죽음의 색이 아닌, 감정의 가장 마지막 층위에서 피어나는 존재의 흔적입니다.
3. 로스코 채플과 현대미술의 영적 흐름
블랙 페인팅이 가장 집약적으로 설치된 곳은 미국 텍사스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입니다. 이 공간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닌, 명상과 평화를 위한 예술적 성소입니다. 로스코는 건축가와의 긴 논쟁 끝에, 채플 내부의 구조와 조명, 그림의 위치까지 직접 설계하며 자신의 마지막 이상을 투영했습니다.
이 채플 안에는 총 14점의 대형 블랙 페인팅이 벽면을 따라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자연광이 떨어지는 둥근 천장이 있습니다. 이곳은 종교적 구분 없이 누구나 침묵하며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관객은 회화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고요하게 머무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영적 추상화는 오늘날 다양한 현대미술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제임스 터렐, 아니시 카푸어, 빌 폰타나 등은 빛, 공간, 소리, 침묵을 매체로 하여 인간의 감각 너머를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 흐름의 뿌리에는, 말년의 로스코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론: 어둠으로 말하는 빛의 회화
마크 로스코의 블랙 페인팅은 ‘추상화’라는 장르를 초월한 철학적 사유의 공간입니다. 이 회화는 시각적 화려함 대신, 침묵과 어둠, 감정과 존재를 사유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에 ‘머무는’ 경험을 하게 되며, 그것은 마치 사찰이나 교회에서의 명상과도 같습니다.
검정은 더 이상 죽음의 색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지막 질문을 던지는 색이며, 삶과 죽음 사이의 중간 지대에서 우리 존재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로스코는 회화라는 프레임 안에 하나의 우주를 열어주었습니다. 그 우주는 조용하지만 강렬하며, 그림 앞에 선 자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그림 속에서 말을 거는 어둠,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생의 마지막 빛—그것이 바로 마크 로스코의 블랙 페인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