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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넷 뉴먼과 이우환의 추상적 대화, 공명

by uuart 2025. 5. 25.

침묵으로 말하는 두 그림

예술은 언어가 멈추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말보다 더 깊은 감정, 논리보다 더 본질적인 물음은 종종 이미지로 존재하며, 특히 추상미술에서는 그 경향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 바넷 뉴먼과, 한국 단색화의 거장 이우환은 서로 다른 시대, 문화, 언어권에 살았지만, ‘침묵’과 ‘존재’, ‘관계’라는 키워드로 이어지는 독특한 공명대를 형성합니다.

뉴먼의 **〈Vir Heroicus Sublimis〉(영웅적 숭고의 인간)**에서 느껴지는 색의 강박과, 이우환의 〈Dialogue〉(대화) 연작에서 드러나는 여백과 붓질의 리듬은 서로 완전히 다르지만, 그 차이 속에서 깊은 철학적 연결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두 작가의 대표적 작품을 중심으로, 동서양 현대미술이 어떻게 ‘침묵’과 ‘존재’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지를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바넷 뉴먼과 이우환의 추상적 대화


1. 바넷 뉴먼: 색과 선으로 정의된 존재의 숭고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은 미국 추상표현주의 2세대 작가로 분류되며, 미술사에서는 **색면추상(Color Field Painting)**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작품은 ‘ZIP’이라 불리는 세로선과 단일한 색면의 반복으로 이루어집니다. 대표작인 **〈Vir Heroicus Sublimis〉**는 가로 약 5미터에 달하는 캔버스를 붉은 단색으로 채우고, 그 위에 가느다란 수직선(ZIP)을 배치한 구조입니다.

뉴먼은 이 ZIP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선으로 인간 존재의 자리를 만들었다.”

ZIP은 단지 구획이 아니라, 캔버스 안에서 관람자와의 관계를 생성하는 존재의 흔적입니다. 이 선은 나와 너를 구분짓고, 색과 침묵 사이의 긴장감을 형성하며, 화면 안에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뉴먼은 색이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었고, 화면은 단지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내면을 응시하는 장이었습니다.


2. 이우환: 여백과 흔적으로 이루어진 동양적 사유

이우환(Lee Ufan, 1936~)은 한국 단색화의 대표 작가이자, 일본 ‘모노하(もの派)’ 운동의 주요 이론가입니다. 그의 대표 연작인 〈Dialogue〉 시리즈는 넓은 여백의 캔버스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도포된 몇 개의 붓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획은 붓에 물감이 점차 마르면서 형태가 흐려지며 끝나고, 다음 붓질까지의 여백은 침묵의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이우환은 회화라는 것이 “자신만의 표현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과정”이라 보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림은 나의 행위와 세계의 응답 사이에 놓인 것이다.”

이 점에서 그의 그림은 존재와 시간, 행위와 응답의 반복을 시각화합니다. ‘침묵의 여백’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관람자의 사유를 유도하는 **존재의 장(場)**이며, 그것은 바넷 뉴먼의 ZIP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두 작가는 ‘그리지 않은 공간’의 힘을 깊이 인식하고 활용했다는 점에서 통합니다.


3. 비교와 연결: 선과 여백, 색과 침묵의 공명

이제 두 작가의 작업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다음과 같은 철학적, 조형적 유사성과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분바넷 뉴먼이우환
회화 형식 단색 색면 위 수직선(ZIP) 흰 캔버스 위의 붓질(획)
공간 개념 색으로 채우고, 선으로 구분 여백 중심, 붓질로 존재 표시
철학적 주제 숭고, 인간 존재, 내면 관계, 응답, 시간의 흐름
관객과의 관계 화면에 몰입하도록 유도 거리를 두고 사유하게 유도
회화적 제스처 극단적 간결성, 힘 있는 색 절제된 행위, 여운과 반복
 

두 사람은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회화는 존재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뉴먼은 강한 색과 선으로 ‘존재의 감정’을 환기했고, 이우환은 여백과 획으로 ‘존재의 흔적’을 만들어냅니다. 뉴먼은 신(神)의 언어를 말하려 했고, 이우환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침묵을 포착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둘 다, 감정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통해 말하려는 화가였습니다.


결론: 동서양 추상의 대화, 그 사이에 서다

바넷 뉴먼과 이우환. 두 작가의 회화는 전혀 다른 언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존재론적 대화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는 단색의 절대성으로, 하나는 여백의 무한함으로, 서로 다른 길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려 했습니다.

이들의 작업은 오늘날 추상미술이 단순한 장르를 넘어서, 철학적 탐색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술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 너머의 세계를 열어주는 창이라는 것. 뉴먼과 이우환은 그 창을 침묵의 회화로 열었습니다.

그림은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 앞에서 말없이 오래 서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두 작가의 ‘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