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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 엄마, 현대 조각, 모성

by uuart 2025. 5. 21.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 상처, 기억, 치유를 짜올리는 조각

20세기 후반 조각예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흔든 한 작품이 있다. 그것은 단지 거대한 규모 때문이 아니라, 조형물 그 자체가 감정의 구조물이며 심리적 서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대표작 Maman(엄마), 일명 ‘거미’는 단순한 동물 형상을 넘어선 상징과 은유, 여성성과 모성, 상처와 치유의 상징물이다. 이 거대한 조각은 전 세계 주요 미술관 앞에 설치되며 관객들에게 깊은 감정적 파동을 남긴다. 부르주아는 왜 거미를 ‘엄마’라 불렀을까? 그리고 왜 이 작품은 현대미술에서 가장 강력한 조각 중 하나로 평가받을까?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 엄마, 현대 조각, 모성


1. *거미(Maman)*는 왜 ‘엄마’인가? – 부르주아의 기억과 심리적 내면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는 98세까지 작업을 이어간 프랑스 태생의 미국 작가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가족에 대한 기억을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그녀에게 거미는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어머니의 상징이었다. 부르주아의 어머니는 섬유 복원가로, 낡은 태피스트리를 섬세하게 수선하는 일을 했다. 작가는 어머니를 “인내심 있고, 지혜롭고, 보호적이며 창조적인 존재”로 기억했고, 그 모든 덕목을 거미의 형상에 투영했다.

1999년 제작된 Maman은 약 10m에 달하는 높이와 9m의 너비로 철강과 대리석, 청동으로 제작되었다. 거대한 다리 아래에는 대리석 알을 품고 있는 복부가 있다. 이 모습은 무서움과 동시에 보호 본능을 자극하며, 거미가 지닌 모순된 상징성 — 파괴와 보살핌, 혐오와 숭배 — 을 한눈에 보여준다.

부르주아는 작품 노트에서 “거미는 내 어머니처럼 실을 자아내고, 섬세하게 수선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라고 적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생물의 재현이 아닌, 작가의 개인적 트라우마와 어머니에 대한 찬미, 그리고 여성성에 대한 깊은 사유의 결정체다.


2. 현대 조각의 경계를 넘다 – 장소 특정적 조각과 감정의 구조물

Maman은 1999년 테이트 모던(Tate Modern) 개관 전시를 위해 처음 설치되었고, 이후 뉴욕, 빌바오, 도쿄, 서울, 오타와 등 전 세계 미술관의 전면 광장에 놓이게 되었다. 이 거미는 매번 다른 공간에 놓이며, 그 장소성과 관객의 심리 반응을 바탕으로 새로운 내러티브를 생성한다.

현대 조각은 단순한 조형물에서 벗어나 공간을 점유하고, 감정을 유발하며, 기억을 재구성하는 ‘심리적 건축물’로 진화했다. 부르주아의 거미는 그 선두에 있다. 관객은 이 거대한 조형물 아래를 지나며 압도됨을 느끼고, 동시에 그늘 아래서 보호받는 듯한 안도감도 경험한다. 이 이중적 감정은 조각이 단지 시각적 형상이 아니라, 감정적 체험의 장으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또한 거미는 항상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모든 이의 어머니’처럼 자리한다. 개인의 트라우마에서 시작된 조각이 공공의 공간에서 보편적 감정으로 확장되는 지점, 바로 그것이 Maman이 예술사적 가치를 갖는 이유다.


3. 여성성과 모성, 그리고 페미니즘 조각으로서의 의미

부르주아는 일생 동안 여성성과 신체, 가족 관계에 대한 작업을 지속해온 작가다. 특히 그녀의 조각은 전통적인 남성 중심 조각사에서 소외된 여성적 시선과 경험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Maman은 그 정점에 있는 작품으로, 여성 작가가 만든 여성적 형상으로서 모성의 복잡성과 강인함을 동시에 상징한다.

거미는 고전 신화나 문학에서 종종 위험하고 파괴적인 존재로 묘사되지만, 부르주아는 그 이미지에 저항하며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그녀는 거미를 "치유하는 존재", "세상을 짜는 존재", "가정을 지키는 지혜로운 존재"로 재정의함으로써, 여성성과 모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전복했다.

이 작품은 단지 여성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페미니즘 조각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1세기 이후 다양한 젠더 정체성과 가족 구조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면서, Maman은 더욱 확장된 의미를 갖는다. 그 안에는 전통적 역할과 권력관계를 재구성하려는 예술의 힘이 녹아 있다.


결론: 개인의 고통에서 세계적 상징으로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Maman)*는 단지 대형 조형물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받은 딸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오마주이며, 여성의 삶과 창조, 보호의 본능을 담은 서사 구조이다. 작가의 개인적 기억에서 출발했지만, 관객은 그 안에서 자신의 상처와 관계,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예술은 때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 된다. Maman은 그 진리를 증명하는 상징이다. 현대 조각의 한계를 확장하고, 여성적 서사를 강력하게 드러낸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관객들과 감정의 실을 짜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래서 묵묵히 서 있는 또 하나의 존재, ‘거미’를 통해 예술의 위안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